LG 문보경은 올 시즌 리그 최고의 4번타자로 꼽히기에 손색없다. 주자의 유무, 투수의 유형과 관계없이 4번타자의 본능인 해결능력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엄청난 초반 페이스에도 그는 “벌써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잠실|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4번타자는 팀 공격의 핵심이다. 상징성도 크다. 최근 들어 ‘강한 리드오프(1·2번타자)’를 강조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4번타자가 타선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4번타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회가 왔을 때 타점을 올리는 해결사 본능이다. 찬스에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미지도 강하다. 지난 시즌에도 리그 4번타자 타점 공동 1위(133타점)였던 KIA 타이거즈는 정규시즌-한국시리즈(KS)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LG 트윈스는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4번타자 타점 4위(119타점)였던 삼성 라이온즈는 KS 무대를 밟았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가장 돋보이는 4번타자는 문보경(25·LG)이다. 16일까지 팀이 치른 전 경기(19경기)에 4번타자로 나서 타율 0.380(71타수 27안타), 4홈런, 19타점을 올렸다. 4번타자 타율 2위(0.307·75타수 23안타)를 기록 중인 빅터 레이예스(롯데 자이언츠)와도 차이가 크다. 지난 3년 연속(2022~2024년)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자신의 평균치를 만들었는데, 올 시즌에는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올라설 기세다. 올 시즌 리그 평균 4번타자 타율이 0.279임을 고려하면, 문보경의 초반 페이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문보경은 올 시즌 단 한 번도 4번타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찬스 상황에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남다른 해결능력을 자랑한다. 누상에 주자를 두고 35타수 13안타(타율 0.371)를 기록했는데, 그 중 득점권에서 8안타, 2홈런, 16타점을 올렸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만루 상황에서 4타수 3안타(타율 0.750), 7타점을 기록한 것 역시 그의 강심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자가 없을 때도 36타수 14안타(타율 0.389)를 기록하며 기회를 창출하는 역할까지 해냈다.
문보경의 해결사 본능을 엿볼 수 있는 지표는 또 있다. 절체절명의 승부처인 7회 이후, 2점차 이내일 때 성적이다. 10타석에 들어섰고, 4타수 4안타 6볼넷으로 100% 출루에 성공했다. 상대 배터리로선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선두타자로 등장했을 때도 거침없는 스윙으로 19타수 8안타 2홈런을 기록했으니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투수의 유형도 가리지 않는다. 좌타자임에도 좌투수를 상대로 26타수 10안타(타율 0.385), 1홈런, 9타점으로 무척 강했다. 우투수(타율 0.359·2홈런·9타점), 언더투수(타율 0.500·1홈런·1타점)를 상대로도 잘 쳤다. 어떤 유형의 투수를 내보내든 거침없이 자기 스윙을 하는 까닭에 데이터에 따른 투수교체도 쉽지 않다. 15일 잠실 삼성전 1회말에는 왼손을 놓으면서 배트에 공을 맞히는 기막힌 콘택트능력을 자랑하며 결승타를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경이적인 출발에도 문보경은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 몇 경기 치르지 않아서 벌써 판단하기는 이르다. 시즌은 길다. 계속 좋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